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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정보]

잡코인 판 키워준 정치인들…납치·살인 문제 되자 "잘 몰라"

중앙일보  -  입력 2023.04.10 05:00

이찬규 기자

“미세먼지 저감활동을 위한 여러 가지 국가 차원의 행정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지난 2020년 11월 19일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였던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미세먼지 생활안전 포럼’에서 인사말을 했다. 민주당 소속 안호영·김윤덕·진성준 의원과 국민의힘 소속 정운천 의원이 공동 주최한 행사를 주관한 것은 강남 납치·살인 사건의 배경이 된 퓨리에버코인(PURE·이하 퓨리에버)의 발행사인 유니네트워크였다.

KT 마케팅본부 영업사원 출신이라는 이모씨가 2014년 설립한 이 회사는 2019년 퓨리에버 발행을 추진해 2020년 11월 13일 거래소 코인원에 상장됐다. 서울남부지검의 별도 수사과정에서 상장 과정에서 상장브로커에게 수천만원을 뒷돈이 건네졌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상장 후 한 달 만에 퓨리에버의 거래 가는 1만354원까지 치솟았지만 한 달 만에 추락하기 시작해 9일 오후 4시 현재 2.72원이다.

퓨리에버 상장 6일만에 열린 이 포럼은 각종 코인 전문 매체를 타면서 초기 급등을 이끄는 자극제로 기능했다. 유니네트워크는 상장을 앞둔 2020년 10월 박수현 전 문재인 정부 청와대 대변인이 회장을 맡았던 유엔해비타트 한국위원회와 업무협력 양해각서를 맺기도 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그린뉴딜과 도시 공기 질 개선사업 연구 및 네트워크 구축” 등의 내용이 양해각서에 담겼다. 박 회장과 유니네트워크 이모 의장이 이 문서를 들고 찍은 기념사진은 상장에 쓰인 백서(white paper)에 실렸다. 경찰은 이 코인 발행 및 상장 과정 전체에 사기 혐의가 농후하다고 보고 전방위로 수사를 확대 중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안 의원 측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국회 포럼 주최자에 (의원의) 이름만 올리는 경우가 있다. 다른 의원실에서 공동으로 패널을 섭외하자고 했을 것”이라면서 “이 대표와는 친분도 교류도 없다”고 말했다. 박수현 전 대변인도 “이 대표를 잘 모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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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주최한 '미세먼지생활안전포럼'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안 의원 측은 시세 조작 관련성을 전면 부인했다. 독자 제공

퓨리에버코인은 투자자들에게 정치인과의 협력 관계를 강조하며 홍보했다. 퓨리에버코인 백서에 등장하는 정치인들은 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퓨리에버코인 백서 캡처

피해자 부부 주도 ‘바인빗’ 홍보에는 정대철·양승조 축사

 문재인 정부 시절 정치인들이 잡코인 열풍 조장에 활용된 사례는 여럿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이 ‘코인 민심’의 눈치를 보느라 가상화폐 거래 규제를 차일피일한 데 그친 게 아니고 적극적으로 코인 열풍에 편승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납치·살인 사건의 피해자인 A씨 부부가 발행했던 가상화폐 바인빗 홍보 과정에도 정치인들이 등장한다. A씨 가족회사 T사는 2019년 12월18일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가 총재로 있는 (사)한국블록체인기업진흥협회 등과 함께 ‘2019 한-우즈벡 핀테크 블록체인 포럼’을 주최했다. T사는 각종 코인 전문지 당시 야당 국회부의장과 두 명의 관계부처 장관도 참석한다고 홍보했지만 불발됐고 당시 양승조 충남지사는 영상 축사를 보냈다. 정 전 대표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총재를 맡아달라는 부탁에 축사 정도만 해주고 있다. 블록체인 관련해서 잘 몰라 현재 공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 전 지사도 “영상 축사가 많아 모든 행사를 기억하진 못한다”면서 “가상화폐가 혁신적인 사업이다 보니 (정치인으로서) 그에 대한 영상 축사는 당연히 했을 것이다. 다른 정치인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가 강남 납치살인 피해자 A씨 가족회사의 주최행사에 참여했으나 ″기억나지 않는다. 지인 부탁으로 축사정도만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독자 제공

당시 양승조 충남지사가 강남 납치살인 사건의 피해자 가족회사가 주최한 행사에 영상 축사를 전했다. 독자 제공

 세계 최초 온실가스 감축 블록체인을 내세운 W재단의 가상화폐 ‘W그린페이’는 2017,2018년 국회에서 개최한 대국민 온실가스 감축운동 발대식과 포럼을 홍보수단으로 내세웠다. 2018년 행사에서는 당시 정세균 국회의장, 추미애 민주당 대표,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 등 당시 여당 핵심 인사들이 참여했다. 개인의 온실가스 저감 노력을 코인으로 보상해 다양한 결제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주장한 ‘W그린페이’는 이름 모를 중소 거래소에 상장돼 거래되다 이 마저도 모두 중단됐다. 두 행사를 공동주최한 임종성 민주당 의원 측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환경캠페인만 주최했을 뿐 가상화폐를 발행하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노웅래 민주당 의원과 김선동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은 ‘콕플레이’가 개최한 2019년 컨퍼런스에서 축사했다. 이더리움 등을 콕플레이 코인으로 구매하면 매월 3~12%의 이자를 지급한다고 주장했던 ‘콕플레이’ 코인은 결국 다단계 사기로 드러나 검·경의 수사가 진행 중이다.

코인업계에 따르면 코인 홍보를 위해 정치인과 연결해 주는 기업이 존재한다. 현재 강남경찰서에서 보완 수사 중인 콕플레이가 2019년 개최한 컨퍼런스에 노웅래 민주당 의원과 당시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콕플레이 백서 캡처

 가상화폐 업계에 따르면 가상화폐 판촉에 정치인들의 활용하기 위해 행사 참석 및 축사를 유치해 주는 회사들도 활발히 활동해왔다고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치인과의 연줄을 통해 정치인을 잡코인 행사에 섭외를 해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회사가 있다”며 “A기업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박성중 동국대 블록체인연구소장은 “수익 구조가 없고 실체 없는 사업일수록 정치인 등 유명인 마케팅에 집중한다”며 “정치인들은 잡코인 퇴출을 위해 코인 시장이 관리되도록 입법 활동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퓨리에버나 바인빗과 같이 실체가 없음에도 다단계식 프라이빗 세일과 뒷돈 상장을 통해 거래소에서 유통 중인 잡코인은 여전히 부지기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코인원은 지난 7일에야 퓨리에버를 거래유의 종목으로 지정했다. 강승구 옳은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루나, 테라와 같은 대형 코인에 대한 수사도 소걸음인데 잡코인에 대한 수사는 얼마나 더디겠느냐”며 “수사도 수사지만 지금이라도 가상화폐의 법적 성격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거래 규칙이 제정해 추가적인 피해 발생을 예방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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